가은이는 요즘 인사하기에 제대로 재미가 들렸다.
첫돌이 되기 전부터 여느 아기들처럼 손 흔들어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요즘에는 아무데나 대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확실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즐기는 수준이다.
하루에도 고정적으로 반드시 인사를 나누는 인사친구들이 있는데
그 중에 1등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는 건 우리집 기사 아저씨다.
아저씨가 출근해서 벨을 누르는 시각은 매일 아침 8시 30분.
벨소리가 들리면 타다다다, 달려가서 아저씨와 인사를 나눈다.
얼마나 정답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지,
먼 길 버스에 시달려 출근했을 기사 아저씨가 출근길 피로도 잊고 'Good girl'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가은이의 인사친구 2등은 쓰레기 아저씨다.
매일 아침 10시에 우리집 벨을 누르고 쓰레기를 가져가는 아저씨는
가은이에게 '나마스떼'하는 인도 인사를 가르쳐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합장을 하듯 두 손을 가만히 모으고 겸손하게 허리를 구부려서 '나마스떼'하는데
가은이가 언제부터인지 그 인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물론, 말은 못하고 동작도 어설프지만.
신기한 건 반드시 쓰레기 아저씨한테만 '나마스떼'를 한다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내리다가, 쓰레기 아저씨를 만나면
얼른 돌아서서 '나마스떼'를 한다.
가끔 아저씨가 우리집 현관 앞을 물청소 해주시고, 더 신경써서 쓰레기를 가져가는 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쁘다.
마지막 가은이의 인사 친구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다.
놀이터에 갈 때나 나랑 슈퍼에 갈 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아파트 현관에 경비 아저씨 두 명이 앉아 있는데
가은이는 앞을 보고 똑바로 걸어가면서도 입으로는 꼭 'Bye'하고
손을 살짝 내밀어 그 두 사람과 차례로 악수를 한다.
놀라운 것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도 매우 유연하게 악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그 때부터는 가릴 것도 없고, 형식도 없다.
보는 사람들마다, 길에 어슬렁거리는 소와 당나귀들에게, 시궁창에 코를 박은 돼지 가족들에게,
하늘과 나무와 꽃들에게, 쉴 새 없이 인사한다.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 반, 받아주지 않는 사람이 반이어도
가은이는 상처 받지 않고 다음날이면 또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서 다녀가신 엄마 아빠가 우리집에 얼마간 머무시면서 가은이의 그런 모습을 보시고는
- 얼마나 인사를 잘하는지 인도 대통령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 자리 하나 정도는 해야겠다.
고 하셨을 정도다.
나는 가은이를 낳기 전에는 인도 사람들과 사실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우리집 기사 아저씨와도 경비 아저씨들과도 쓰레기 아저씨와도.
그래서 그 아저씨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빛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나는 잘 몰랐다.
함부로 대한 적은 없지만 마음을 담아 대한 적도 없다.
같이 웃은 적도 없고, 손을 잡아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가은이는 매일 그들과 웃고, 손을 잡고, 살을 부비고, 마음을 나눈다.
나는 그저 가은이를 따라서 아저씨들과 인사를 하고,
그 덕에 그들의 웃는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았고,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다.
입으로 가르치는 엄마가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가은이가 나를 가르친다.
제발, 눈 좀 맞추면서
손도 좀 잡아가면서
눈물도 닦아줘가면서
그렇게 지내라고.